CFO로서의 특별한 이슈가 없던 오늘, 불연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커피를 마신 것도,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하는 것도 과연 나의 자유로운 선택이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바이오분야 연구원 출신이기도 한 저에게 인간 존재 본질에 대한 유전자적인 측면과 자유의지를 연계하여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을 가지게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과 선택을 '내가 원해서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전학과 심리학은 이 믿음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의도한' 선택을 한 것처럼 느끼지만, 실제로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조건이 상호작용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1).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자유로운 존재일까? 유전자는 우리를 어디까지 규정하며, 우리는 그것을 얼마나 넘어설 수 있을까? 고민해봤습니다.
참고로 본 내용은 학술적 근거 뿐만 아니라 저의 개인적인 견해도 일부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유전자가 결정하는 것들
현대 유전학 연구는 다양한 인간 특성이 유전적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수치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표. 항목별 유전 영향력(Heritability)
| 항목 | 유전 영향력(Heritability) |
|---|---|
| 키 | 약 80% |
| 지능(IQ) | 약 50~70% |
| 성격(Big Five 요소) | 약 40~60% |
| 우울증·불안감 | 약 30~50% |
| 정치 성향 | 약 40% |
| 음주·흡연 습관 | 약 50% |
위 수치는 해당 특성에 유전자가 어느 정도 기여하는지를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키의 경우, 약 80%가 유전적 요인에 의해 설명되며 나머지는 영양이나 운동 등 환경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의미입니다(2).
특히 '정치 성향'이나 '도덕적 판단 기준'과 같이 주관적이라고 여겨지는 성향조차 유전자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주목할 만합니다(3). 이는 인간의 신념과 가치관이 단순히 개인의 의지나 사회적 학습만으로 형성된 것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똑같은 유전자, 다른 인생: 일란성 쌍둥이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적으로 100% 동일한 DNA를 공유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들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연구에서는 한 쌍의 쌍둥이 중 한 명은 정신질환을 앓는 반면, 다른 한 명은 건강한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사례가 다수 보고되었습니다(4). 또한 동일한 유전자를 지닌 형제임에도 정치적 성향이 극명하게 다른 경우도 관찰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유전자가 곧 운명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동일한 유전자가 있더라도 그것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이며, 그 과정에 깊이 관여하는 것이 바로 '환경'과 '후성유전학(epigenetics)'입니다.
후성유전학: 유전자를 바꾸는 것들
후성유전학은 유전자 자체의 염기서열이 변하지 않더라도, 환경 요인에 따라 유전자의 발현 상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합니다.
예를 들어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스트레스 반응 조절과 관련된 유전자의 메틸화에 영향을 주어 불안과 우울 증상의 가능성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5). 반대로 긍정적인 대인 관계, 안정된 가정환경, 규칙적인 운동 등은 정서적 안정과 관련된 유전자의 발현을 촉진합니다(6).
즉, 유전자는 단순한 운명이 아니라, 삶의 경험에 따라 유연하게 반응하는 '잠재적 설계도'입니다. 인간은 이 유전적 기반을 바탕으로 환경과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자유의지의 존재
자유의지에 대해 신경과학과 심리학은 다양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벤자민 리벳(Benjamin Libet)의 유명한 실험에서는 인간이 의식적으로 결정을 내리기 이전에 뇌가 이미 행동을 준비하고 있다는 신호가 먼저 포착되었습니다(7). 이 실험은 자유의지가 뇌의 자동적 신경 활동 이후에 발생하는 '해석'일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유전적 성향과 생물학적 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지하고 조절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예를 들어 충동 조절력이 유전적으로 낮은 사람이라도 인지 행동 치료, 명상, 자기 인식 훈련을 통해 충동성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8). 이처럼 자유의지는 절대적인 자율성이 아니라, 제약된 조건 속에서도 의도적으로 방향을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으로 재정의되어야 합니다.
관련된 여러 근거에 비추어 고민해봤을 때 저는 유전자는 인간의 특성과 경향성을 분명히 설정하지만, 그것은 결코 고정된 틀이 아니라는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유전자는 가능성의 경계일 뿐이며, 그 안에서 인간은 자신의 경험과 선택을 통해 얼마든지 새로운 경로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자유의지는 어떤 절대적 능력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 속에서 '의미 있는 선택'을 반복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반복되는 선택 속에서, 인간은 점차 자신의 궤적을 스스로 설계해나가는 존재가 되어가는 거 아닐까요?
긴 시간은 아니였지만, 제 유전적 배경과 현재의 나 사이에서, 어떤 '가능한 나'를 계속 탐색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참고문헌 및 인용 자료
- (1) Pinker, S. (2002). The Blank Slate: The Modern Denial of Human Nature.
- (2) Silventoinen, K. et al. (2003). "Heritability of adult body height: a comparative study of twin cohorts in eight countries." Twin Research and Human Genetics.
- (3) Hatemi, P. K. et al. (2014). "Genetic influences on political ideologies." American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 (4) Kendler, K. S. et al. (1993). "A twin study of major depression." Archives of General Psychiatry.
- (5) McGowan, P. O. et al. (2009). "Epigenetic regulation of the glucocorticoid receptor in human brain associates with childhood abuse." Nature Neuroscience.
- (6) Essex, M. J. et al. (2013). "Epigenetic mechanisms of stress response." Development and Psychopathology.
- (7) Libet, B. et al. (1983). "Time of conscious intention to act in relation to onset of cerebral activity." Brain.
- (8) Moffitt, T. E. et al. (2011). "A gradient of childhood self-control predicts health, wealth, and public safety." PNAS.
